짝꿍을 믿고 생애 처음 걸어본 8.6km

짝꿍을 믿고 생애 처음 걸어본 8.6km
시각장애인 스포츠 지원사업 ‘워크투게더’ 현장


‘워크투게더’ 프로그램 참가자 모습. 시각장애인 15명과 비장애인 15명이 함께했다.
‘워크투게더’ 프로그램 참가자 모습. 시각장애인 15명과 비장애인 15명이 함께했다.


지난 10월 17일 토요일 아침, 올림픽공원역 앞 광장에 서른 명이 모였습니다. 흰 지팡이를 들거나 안내견과 함께한 사람도 눈에 띄었습니다. 푸르메재단이 진행하는 시각장애인 스포츠 지원사업 ‘워크투게더’ 참가자들입니다. 아직은 얼굴도, 이름도 낯선 사이. ‘누구와 짝꿍이 될까’ 하는 설렘이 오가는 가운데, 시각장애인 15명과 비장애인 15명이 각자 자신의 짝을 만나 인사를 나눕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탄천을 따라 이어지는 서울둘레길 8코스의 끝자락인 수서역. 약 8.6km의 길입니다. 시각장애인 참가자 대부분이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거리이지요. 목표 완주 시간은 3시간 30분. ‘내가 정말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참가자들은 짝꿍과 보폭을 맞춰 조심스럽게 첫걸음을 뗐습니다.


혼자라면 포기했을 길, 짝꿍과 함께하니 즐겁다


시각장애인 참가자가 짝궁과 함께 안전하게 길을 걷고 있다


“앞에 두 걸음 정도 되는 폭의 넓은 계단이 있어요.” “한 걸음 앞에 턱이 있어요. 조심하세요.” “지금부터 내리막길입니다.”


출발선의 긴장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시각장애인 참가자들은 짝꿍의 팔을 잡고 함께 걸으며 낯설고 먼 길에 대한 두려움을 접었습니다. 걸음이 익숙해지자 곧 둘 사이에 대화가 이어졌지요. 오늘 행사에 참가한 계기부터 지금 하는 일, 취미, 가족 이야기 등 서로의 일상을 나눴습니다. 한 참가자는 “오늘 친구 같은 동생을 만나 기쁘다”며 “친한 친구와 수다 떨 듯 대화하다 보니 걷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했지요.


시각장애인 참가자가 비장애인 짝궁, 안내견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


10월인데도 땀이 날 만큼 햇볕이 뜨거웠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걷기 좋은 하루였습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평소라면 이런 날씨에도 밖에 나와 걸을 생각은 못 했을 거예요. 혼자라면 포기했을 길을 짝꿍과 함께 걸으니 정말 즐거워요.” 처음 걸어본 먼 거리에 힘들 법도 하지만, 참가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각장애인 참가자가 비장애인 짝궁과 함께 숲길을 안전하게 걷고 있다


코스 중간에는 특별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비장애인 참가자들도 안대를 쓰고 일렬로 서서 앞사람의 어깨를 잡은 채 700m가량을 걸어 보는 체험입니다. 모두 앞사람을 믿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지요. 시각이 차단된 상황에서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느껴본 시간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도 옅어졌습니다. “처음엔 두려웠는데, 걸으며 앞사람을 온전히 믿게 되니 오히려 편안해졌어요. 평소 느끼지 못했던 바람, 햇살, 새소리가 훨씬 크게 다가왔습니다.”


비장애인 참가자들도 안대를 쓰고 걸으며 다양한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비장애인 참가자들도 안대를 쓰고 걸으며 다양한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걸어보는 먼 길, 걱정과 달리 참가자 전원이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제법 험한 산길과 차가 다니는 왕복 6차선 도로도 지났지만, 돌발상황 없이 모두가 안전하게 완주했지요. 예정된 시간도 넘기지 않았습니다. 이날의 경험은 참가자 모두에게 ‘함께 해냈다’는 기쁨과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5분 거리 편의점도 가기 두려운 사람들…
누구나 안전하게 집 밖으로 나설 기회와 환경 필요


시각장애인 참가자들은 이날 비장애인 짝궁의 손이나 팔을 잡고 제법 험한 숲길도 거뜬히 걸었다
시각장애인 참가자들은 이날 제법 험한 숲길도 거뜬히 걸었다


“서울에 산 지 9년째인데, 이렇게 긴 시간을 걸어본 적이 없어요. 서울둘레길이 있는지도 몰랐고요. 저희에게는 5분 거리 편의점에 가는 것도 너무 무섭고 힘든 일이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마음 편히 안전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며 걸었습니다.”


이날 행사에 함께한 시각장애인 유튜버 허우령 씨의 소감에는 시각장애인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또 다른 참가자도 “평소에는 길에 장애물이 있을지, 이 길이 맞는지 계속 고민하며 걷는다”며 “짝꿍과 함께 걸으니 아무 걱정 없이 편안했다”고 덧붙였지요.


이런 어려움은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2024년 기준 국내 등록장애인은 약 263만 명, 이 가운데 시각장애인이 9.4%를 차지합니다.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율은 35.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장애인 세 명 중 두 명은 체육활동에서 소외되어 있지요. 장애인이 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혼자 운동하기 어려워서’(26.8%)가 꼽혔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이 문제는 더 절실합니다. 이동과 시각 정보에 제약이 있어 곁에서 안내해 줄 사람이 없으면 걷기조차 힘듭니다. 운동할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함께할 사람과 안전한 기회가 없어서 시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 유튜버 허우령(사진 오른쪽) 씨도 워크투게더에 참여해 8.6km를 함께 걸으며 프로그램의 취지를 알렸다시각장애인 유튜버 허우령(사진 오른쪽) 씨도 워크투게더에 참여해 8.6km를 함께 걸으며 프로그램의 취지를 알렸다


그래서 푸르메재단은 시각장애인 스포츠 지원사업의 하나로 <워크투게더>를 시작했습니다. ‘혼자서는 어려운 길’을 ‘함께라면 가능한 길’로 바꾸어, 시각장애인이 신체적 자신감과 사회적 연결성을 되찾을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한 기업 데라게란덴이 힘을 보탰지요. 오는 11월 21일(토)에도 시각장애인 15명, 비장애인 15명이 한강과 난지도 수변공원, 하늘공원의 가을 억새를 만나는 서울둘레길 15코스(가양역~증산역, 약 7.7km)를 걸을 예정입니다.



혼자서는 5분 거리도 두려웠던 사람이 8.6km를 완주한 하루. 그 길을 더 멀리,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이어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푸르메재단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글= 오선영 부장(마케팅팀)
사진= 푸르메재단


상세보기
X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대한 동의

1. 수집항목: 이름, 이메일, 성별, 연령

2. 수집 이용 목적: 광고성 정보 발송(푸르메재단 소식 등)

3. 보유 이용기간: 동의 철회 시까지

4. 개인정보 처리위탁

제공대상 개인정보 이용목적 개인정보 항목
스티비 이메일(뉴스레터) 발송 이름, 이메일, 성별, 연령
㈜더블루캔버스 뉴스레터 신청 이름, 이메일, 성별, 연령

5.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동의 거부권이 있으나 거부 시에는 뉴스레터 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