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제 마음도 잘 지키고 싶어요
아이도 제 마음도 잘 지키고 싶어요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희귀난치질환자 가족 심리상담 지원사업 인터뷰
“매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제가 더 예민해져요. 기온에 따라 희인이의 컨디션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가을이 되면 갑자기 추워져서 다리 근육도 수축하니, 걷는 게 어려워 자주 넘어지곤 했어요. 그래서 추울 때는 집 바깥으로 잘 나가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도 답답해하고, 저도 늘 긴장하고 있어요.”
희인이 어머니 박찬희 씨
“아이의 치료가 우선이었어요”
어머니 박찬희 씨는 아들 희인이와 함께 지냅니다. 희인이가 3살이던 2019년, 동네 병원에서 영유아 건강검진을 하던 중 의료진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의 머리둘레가 또래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의료진은 대형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소견을 전했지만, 홀로 아이를 돌보던 찬희 씨는 시간과 재정의 여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전에 거주했던 돌봄 시설 사회사업팀의 도움을 받아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희인이는 중증 뒤센 근디스트로피1) 진단을 받았습니다.
1) 중증 뒤센 근디스트로피 :
근육이 점차 약해지고 소실되며, 보행 기능 저하와 함께 호흡기 및 심장 기능에도 영향을 미치는 진행성 희귀 유전질환
“이 희귀질환은 6살 무렵에야 보행의 어려움 같이 눈에 띄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그때는 이미 늦다고 해요. 희인이는 영유아 건강검진 덕분에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죠. 그때가 아니었다면 희인이는 지금만큼 지내지 못했을 거예요.”

현재 10살인 희인이는 보행이 조금 불편하지만, 질환의 일반적인 진행에 비해서는 양호한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의료진도 이전에 볼 수 없던 케이스라고 했지요. 긍정적인 이야기였지만, 찬희 씨에게는 희망고문이기도 했습니다. 희인이의 병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사례가 다르다고 들으니 막상 기대가 커집니다. 초등학생인 희인이는 특수학급과 병행하는 통합반을 1학년부터 다니고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근육을 키우면서 성장하죠. 하지만 희인이는 남은 근육을 오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리나 발에 자극이 가는 운동은 피해야 해요.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조금씩 예민해지는 아이를 혼자 키우며 찬희 씨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도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희인이를 학교에 입학시키는 과정도 복잡했을뿐더러 그 정보들을 찾는 것도 오롯이 찬희 씨 몫이었지요.
“문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됐어요. 미혼 한부모 가정이라는 선입견에 맞서야 했지요. 내 아이를 내가 책임지고 키우겠다는데,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화도 많이 났어요.”
본인 마음 회복의 필요를 느끼면서도 아이의 치료가 우선이었던 찬희 씨. 지역 복지관에서 지원하는 상담 치료에도 희인이를 먼저 보내곤 했습니다. 이마저도 경제적인 부담으로 중단해야 했던 때, 찬희 씨는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희귀난치질환자 가족 심리상담 지원사업을 만났습니다.
“예전보다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찬희 씨는 올해 3월부터 10월 현재까지 총 16회의 상담 치료를 받았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압박하는 생각들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늦게 아이를 낳고 혼자 양육하다 보니 자기 신념이 강해졌어요. 나와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지요. 내가 믿는 것만이 정답이라 생각했는데, 심리상담을 통해 나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상담 시간에는 주로 어릴 때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도 건강하지 못했음을 느끼는 동시에, 당시의 경험이 지금 생각과 판단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 혼자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이 점점 달라졌어요.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하니 예전보다 마음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도 조금씩 헤아리며 공감하게 되었죠. ‘그 사람은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요.”

아들인 희인이를 향한 마음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자신의 보호만 받아야 하는 미숙한 존재가 아닌, 온전한 인격으로 존중할 수 있었지요. 엄마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며 배려하려는 모습도 새삼 눈에 띄었습니다. 찬희 씨가 생계유지와 재활치료라는 현실과 고군분투할 때, 희인이는 뒤에서 엄마와 교감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가족과의 교감이 부족함을 느끼곤 했어요. 심리상담을 통해 저의 어린 시절을 보니, 지금 어린이인 희인이가 다시 보였습니다. 그동안 희인이가 아빠의 부재를 실감한다는 걸 곁에서 느끼고만 있었는데요. 이제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더 많이 소통하려고 해요.”
치료와 돌봄을 이어가는 원동력으로
희인이 사진을 보여주는 찬희 씨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 희귀난치질환자 가족 심리상담은 장애인 가족을 위한 마음 돌봄의 필요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재활치료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끝을 알기 어려운 고단한 여정이기 때문이지요. 찬희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늘 다음을 생각해야 해요. 조금이라도 재활이 지연되면 더 큰 손해예요. 치료가 종결되면 대기 명단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그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병원이나 치료 방법을 미리 찾아야 합니다.”
쉴 틈 없이 다음을 준비해야 하기에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는 현실. 이 가운데 심리상담은 찬희 씨의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곧 희인이의 치료를 지속하는 원동력으로 이어졌습니다.
“희인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하지만 3학년이 된 지금,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선생님께 칭찬도 많이 받아요. 좋아하는 미술 공부도 계속하고 있고요. 이렇게 하루하루 잘 지내는 게 참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희인이도, 제 마음도 잘 지키고 싶어요. 푸르메재단과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의 응원에 힘을 얻었습니다. 저만 향했던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서, 좀 더 어른스러워지길 기대해요.”
글=최고은 대리(마케팅팀)
사진=푸르메재단, 박찬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