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푸르메재단 초대이사장을 만나다

백경학이 만난 사람
김성수 푸르메재단 초대이사장


강화도 우리마을에서 만난 김성수 주교님. 주교님은 1930년생으로, 올해 96세가 되셨다.강화도 우리마을에서 만난 김성수 주교님


3년 전 강화도 장애인 공동체 <우리마을>을 찾았을 때,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님은 소매 솔기가 다 닳은 푸른 재킷을 입고 계셨다. 영국인인 장인에게 물려받아 50년 넘게 입은 옷이라고 한다. ‘역시 우리 주교님!’이시다. 가을이 시작되는 문턱에서 푸르메재단의 초대 이사장이신 김성수 주교님을 찾아뵈었다. 


올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최장기간의 열대야에다, 최고 기온이 42.5도까지 올라갔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 여기는 시골이라 인구도 적고 산 중턱에 있어요. 덥긴 했지만 수시로 바람이 불어 다른 사람들보다는 시원하게 지냈어요.


주교님은 더위를 덜 타시나요. 혈색이 좋습니다. (주교님은 1930년생으로 올해 96세가 되셨다)
- 왜요, 더위를 많이 타지요. 딸이 와서 밥을 해주고 매일 반찬도 세 가지 이상 마련해줘서 체중이 80킬로그램이 됐어요. 10킬로그램이 늘어난 거지요.


어떻게 따님이 와계시는 겁니까?
- 집사람(후리다 여사)이 넘어져서 움직이질 못해요.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거동을 못 하니 평일에는 딸이, 주말엔 아들이 돌봐주고 있지요. 매일 아이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간병하러 온 자식들을 매일 볼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씀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당신은 젊은 시절 열심히 운동한 덕에 다행히 지금까지 크게 아프시지 않아서 다행이다. 


배재고 아이스하키 선수 시절의 김성수 주교(맨오른쪽)
배재고 아이스하키 선수 시절의 김성수 주교(맨오른쪽)


<우리마을> 장애인들이 ‘우리는 최고다!’하고 외치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요?
- 우리 친구들은 자기표현을 못 해요.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걱정하지만 그 불편조차 느끼지 못해요. 그러니까 말이라도 “당신들이 나를 걱정할 것 없어, 나는 최고야!” 라고 외치는 기백을 갖자, 그렇게 생각해서 시작된 것이에요. 아이들도 나만 보면 엄지를 척 치켜세우며 자기가 최고라고 얘기해요.


우리나라 최초의 발달장애인특수학교 <성 베드로학교>를 세우셨는데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까?
- 아니야, 우리 성공회 교단과 주교님이 내게 발달장애인을 돌보라고 명령하셨어요. 그래서 시작된 일이지요. 


1974년 성베드로학교 개교 당시 모습(뒷줄 오른쪽 세 번째가 김성수 주교)1974년 성베드로학교 개교 당시 모습(뒷줄 오른쪽 세 번째가 김성수 주교)


성공회대가 들어선 서울 구로구 항동은 옛날 모두 논밭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아이를 방이나 나무에 묶어두고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중 특별하게 보이는 아이들을 위해 <성 베드로학교>가 세워졌다. 부인 후리다 여사는 ‘발달장애’라는 단어조차 없던 시절 놀이치료를 개발하는 등 김성수 주교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콩나물 공장은 2017년 10월 불이 났다가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지 않았습니까?
- 기적이에요. 지금은 모두 50명이 일해요. 29명은 콩나물을 키우고, 21명은 커피 찌꺼기(커피박)를 모아 연필과 배지를 만드는데 당사자보다 부모님들이 더 좋아해요.


 <우리마을>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위한 양로원을 건립한다고 들었습니다.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62세예요. 이들을 위한 양로원을 지으려고 지난해 기공식까지 했는데, 신축 허가가 안 나요. 그래서 기존 건물의 증축신고를 했더니 점자블록을 새로 깔아라,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라 등 이거 하라, 저거 하라 하면서 허가가 안 나요.


주교님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나라가 발전하고 돈도 많이 생겼으니 이제 어려운 사람부터 지원하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시간만 걸리고 정말 속상해요”하고 한숨을 쉬셨다.


이제부터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96년 동안 살아오시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어요?
- 전 거짓말 못 해요. 매일매일 행복해요. 그런데 콩나물 공장에 불이 나서 모두 타버렸는데 동네 사람들과 전등사 스님까지 많은 분이 다시 공장 지으라고 기금을 모아 주셨을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하느님께서 그런 식으로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콩나물공장 화재 당시 모습(오른쪽 사진) 및 재건 후 모습
콩나물공장 화재 당시 모습(오른쪽 사진) 및 재건 후 모습


그럼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 <성 베드로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갈 데가 없었어요. 다행히 아버지가 남겨주신 땅이 있어 이곳에 콩나물 공장을 짓길 원했는데 지을 돈이 없었어요. 그때가 가장 속상하고 힘들었어요.


시간을 되돌려서 주교님은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형편없는 학생이지요. 보잘 것도 없었고…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부모님은 내가 장남이라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이렇게 좋은 학교에 가길 바랐지만 그게 안 됐어요. 부모님을 실망시킨 것이 참 부끄러워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사람들은 지금 <우리마을>이 세워진 온수리 땅을 팔라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땅을 지켜주셨고, 그곳에 오늘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평생 근검절약하셨던 어머니의 위대한 유산이다.


주교님은 어머니의 유산을 결국 사회로 돌려주신 거네요.
- 그렇지요. 막내 누이동생은 사회복지를 공부해 한국에서 교수가 됐고 남동생은 미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해 최근 <우리마을>의 양로원을 짓는 데 사용하라고 100만 달러를 보내줬어요. 너무 고마워요. 다 어머니가 그렇게 해주신 거예요.


지난 2024년 주교님 서품 60주년 행사에 배우 윤여정 씨와 가수 윤형주 씨가 축하해 주시는 것을 봤습니다. 이분들과 오래전부터 교류하셨다고요.
- 배재고등학교 동창 중 최상현이라는 TBC PD가 있었어요. 백인천 PD도 있었고요. 이들이 소개해 줘서 좋은 인연이 이어지고 있지요. 송창식이 특히 고마워요. 환갑잔치 대신 찾아와서 건축비로 100만 원을 주고 갔어요.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주교님은 개성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 온 윤여정을  양딸로 삼았다. 윤여정과 윤형주, 송창식은 총각 신부님의 사제관을 찾아가 노래를 부르며 꼬박 밤을 새우곤 했다. 젊은 날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인연이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주교님, 돌아가시기 전에 특별히 꼭 해보고 싶으신 개인적인 버킷리스트가 있는지요?
- ‘발달장애인도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님의 마지막 꿈은 자식들이 편안하게 사는 걸 보는 거예요.


주교님께 질문하면서 결혼식이나 주교 서품을 받았을 때 혹은 자녀가 태어났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답을 기대했다. 그러나 주교님으로부터 장애인들의 삶의 터전을 세워졌을 때 가장 행복했고 이들이 생을 마치기 전까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요양원이 세워지는 것이 소원이라는 대답을 듣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백경학 상임대표(왼쪽)와 김성수 주교


2005년 설립된 푸르메재단이 올해 26주년을 맞았습니다. 초대 이사장으로서 바람이 있으신지요?
- 푸르메재단을 만들 때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어요. 세상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뜻으로 부인 황혜경 씨가 받은 피해 보상금으로 세워진 만큼 하느님이 늘 함께하실 거예요.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잘할 거예요.


주교님은 세상에 어떤 분으로 기억되길 원하시는지요?
- 그냥 잊혔으면 해요. 사실 저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하느님이 시키는 일이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님께 한말씀 해주세요.
- 먼저 위로의 말씀을 드려요. 부모님들의 고통을 아무도 모를 거예요. 나라가 발달장애인에 대해 관심 가지고 위로도 해주고, 어서 그분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이에요.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 동안 김성수 주교님의 눈빛이 빛나기도 하고 때론 화난 목소리가 함성처럼 사무실에 울려 퍼지기도 했다. 만나 뵐 때마다 ‘부끄럽다’고 얼굴을 붉히시는 ‘영원한 청년’ 우리 주교님의 마지막 소원이 꼭 이루어지시길 바라면서 <우리마을>을 나섰다.



글= 백경학 상임대표
사진/영상= 김홍선 차장(마케팅팀), 푸르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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