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건강검진, “무섭기보단 기쁘고 설레요”
생애 첫 건강검진… “무섭기보단 기쁘고 설레요”
2026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 현장 스케치
푸르메재단이 진행한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에서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채혈하는 발달장애인 모습
“건강검진을 평생 한 번도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오늘 받게 되어 정말 좋아요.”
휠체어에 앉아 어머니 손을 꼭 잡고 검진 순서를 기다리는 뇌병변장애인 이명화(43・여・가명) 씨. 태어나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그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처음 해보는 채혈과 위내시경검사 등이 무섭기도 하지만, 기대와 설렘이 더 큽니다. 혈관 문제로 결국 팔에서는 채혈하지 못하고 방을 옮겨 침대에 누운 채 발등에서 피를 뽑아야 했지만, 곁에서 손잡아준 사회복지사와 의료진의 배려 덕분에 검진을 잘 마쳤습니다.
“나이 들면서 건강검진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지만, 편히 받을 곳을 찾기 어려웠어요. 어머니 혼자 저를 데리고 병원까지 갈 수도 없어서 포기했죠. 오늘은 병원에 오가는 것부터 검진까지 모든 과정에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의료진이 도와주어 마음 편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 건강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어서 안심이에요.”
참여 장애인의 56.3%, 생애 처음 건강검진 받아
장애인의 날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4월 14일. 푸르메재단 산하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과 종로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과 주 돌봄자인 가족 30명이 서울의료원을 찾았습니다. 푸르메재단이 진행한 ‘장애가족 건강검진 지원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사업은 장애인과 그 가족의 건강권을 지키고자 푸르메재단이 오랫동안 기획하고, 지앤엠글로벌문화재단 후원을 받아 마련됐습니다.

검진실 앞에서 대기 중인 장애인과 가족 모습. 이날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과 종로장애인복지관의 사회복지사들이 현장에서 검진을 지원했다.
검진 항목은 신체계측, 혈액검사, 폐기능검사, 위내시경검사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특히 장애인들이 제때 받기 힘든 암 관련 검진도 포함됐지요. 수검자의 성별, 연령, 장애 유형에 따라 맞춤형으로 진행해 장애인들의 건강 문제를 조기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푸르메재단은 향후 검진 결과에 따라 지역 내 의료 자원을 연계해 적절한 치료와 건강관리를 도울 계획입니다.
이번 검진 대상에는 중증의 발달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이 다수 포함됐습니다. 참여 장애인의 56.3%가 명화 씨처럼 생애 처음으로 검진을 받기에 푸르메재단은 서울의료원 의료진, 산하 복지관의 사회복지사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검진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전교육을 철저히 하고,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도 구체적으로 마련했습니다. 지적장애인 장태석(39・남・가명) 씨는 “(건강검진이) 처음인데 잘 받았다”며 “(사전교육에서) 배운 내용이 다 생각나 안 떨렸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의료원 측도 이날 장애가족 건강검진을 위해 프리미엄 건강검진 구역 전체를 비우고 베테랑 검진 인력 30여 명을 배치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이 더 편안하게 검진받을 수 있도록 동선도 조정했습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검진받은 어머니 권정숙(58) 씨는 “아들과 병원에 가면 간호사 5명이 붙잡아야 진료가 가능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오늘은 잘 준비된 의료진과 사회복지사의 도움 덕분에 검진을 수월하게 받았다”며 “발달장애인들이 병원 진료와 건강검진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장애유형별 특성 이해하는 전문인력 양성과 지원 시급
장애인은 의료기관 시설이나 접근성, 의사소통 문제 등 다양한 제약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분석 자료에서 2024년 발달장애인 수검률을 살펴보면, 지적장애인 62.3%, 자폐성장애인 55.0%로, 비장애인 수검률 76.0%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뇌병변장애인 수검률은 45.9%에 불과해 상황이 더욱 심각합니다.
지적장애 아들을 둔 어머니 홍지선(67․가명) 씨는 “대학병원에서조차 발달장애인 응대를 어려워해 피검사만 간신히 받는 수준”이라며 “4~5년에 한 번씩이라도 검진받고 싶지만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아들은 숨을 참으라거나 배를 내밀고 있으라는 등의 말을 이해하고 따르기가 어려워요. 쉬운 말로 천천히 설명하고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며 도와주어야 하지요.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검진해야 하는 일선 병원에서는 이렇게 해줄 여유가 없어요. 돈을 낸다고 해도 받아줄 병원이 없습니다. 정말 간절한 지원이었는데, 푸르메재단이 나서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서울의료원 소속 수어통역사가 청각장애인 수검자에게 검진 과정을 안내하는 모습
푸르메재단과 함께 사업을 진행한 서울의료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장애인 건강검진기관’입니다. 장애인탈의실, 의료장비 및 수어통역 인력 등을 확보하고 휠체어 체중계, 장애특화 신장계, 특수휠체어 등 장애인 검진 필수장비도 갖췄습니다. 심정옥 서울의료원 건강증진센터 파트장은 “장애인 검진에는 비장애인 대비 3~4배의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검진 시설과 장비를 잘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전문 인력과 장애인 검진 매뉴얼 보강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 역시 “장애인이 집 근처에서 쉽게 검진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건강관리를 돕는 것이 향후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지름길“이라며 ”장애 친화적 검진 기관을 늘리고 장애 유형별 특성과 의사소통 방법을 잘 이해하는 의료진이 많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검진조차 받기 어려운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는 멀기만 한 이야기이지요. “이 애를 데리고 어느 병원에서 가서 검진을 받겠느냐”는 보호자들의 한탄과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며 기뻐하던 장애인들의 환한 웃음이 떠오릅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이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푸르메가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글=오선영 부장(마케팅팀)
사진=푸르메재단